바람 부는 날에는 섬으로 갔다.
바람 잔잔한 날에도 섬으로 갔다.
슬픔이 목울대까지 차오른 날에도 섬으로 갔다.
기쁨이 목울대까지 차오른 날에도 섬으로 갔다.
속절없이 그리운 날에도 섬으로 갔다.
오갈 데 없는 날에도 섬으로 갔다.
해 다 저문 저녁에도 섬으로 갔다.
술이 덜 깨 숙취에 시달리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.
칼바람이 온몸에 칼자국을 내던 겨울 한 낮에도 섬으로 갔다.
먹구름이 밀물처럼 몰려오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.
싱그럽고 뜨겁고 헛헛하던 봄, 여름에도, 가을에도 섬으로 갔다.
실연의 상처가 덧나 심장이 뻥 뚫린 날에도
상처에 새살이 차올라 심장이 간질간질 하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.
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.
내가 다시 나를 용서하기로 한 날에도 섬으로 갔다.
인생이 나를 저버린 날에도 섬으로 갔다.
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한 날에도 섬으로 갔다.
한 달 동안이나 아무도
나를 불러주는 이 없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.
그 절망의 밑바닥에서 상현달처럼
다시 사랑이 차오르던 날에도 섬으로 갔다.
그 많은 생애의 날에 나는 섬으로 갔다.
강제윤/바람부는 날에는 섬으로 갔다